본문 바로가기

언론기사/언론기사

[시사저널] 안 죽어도 될 환자, 해마다 4만명이 죽어 간다

안 죽어도 될 환자, 해마다 4만명이 죽어 간다
환자 안전 문제 심각…대책은 커녕 현황 파악 안 돼


2011.01.19 시사저널 노진섭 기자

 


 

▲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해 사건은 수술, 투약, 병원 내 감염에서 주로 발생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사저널자료
 

사람들은 병원을 ‘안전한 곳’으로 여긴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들은 정작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의료 과오로 인해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따금 언론이 보도하는 의료 사고는 환자가 의혹을 제기하거나 법정 판가름까지 가는 사례이다. 의료인들은 이처럼 널리 알려진 의료 사고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수술 실수, 투약 오류, 병원 내 감염 등으로 환자가 영구 장애를 겪거나 사망하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들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병원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만 한 해에 최대 4만명에 이른다는 추정치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의료인은 이 사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의료계에는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의료계 내부에서 양심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의료 환경 나아져도 사고 더 늘어나는 이유

 

일부 의사들은 병원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어린이, 환자에게 병원균이 득실대는 병원은 위험천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사는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의료 사고를 냈다. 환자가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같은 사고가 의료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과거보다 위생 관념이 철저해졌고 의료진도 전문화되었지만 진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과거와 달리 한 명의 환자를 여러 의료진이 진료하면서 허점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또 입원 환자에게 삽입하는 의료 장비도 예전보다 많아져서 감염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환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까?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 교수가 추정치를 내놓았다. 이교수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 안전의 국내외 동향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연구논문에서 사용한 분석 방법을 지난해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나온 건강보험 입원 환자 수에 적용했다. 2009년 입원 환자 5백35만명 중에서 위해 사건 발생 건수를,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자 수를 각각 백분율로 계산했다. 그 결과 입원 환자가 진료 과정에서 상해를 입는 비율이 평균 9.2%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43.5%는 예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률은 평균 7.4%로 집계되었다. 이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3만6천명에 이른다. 최소로 잡아도 연간 1만1천명을 넘는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7천명 선인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어백을 설치하거나 신호 체계를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병원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미국·영국·덴마크·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환자의 안전 현황 조사와 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피해 규모와 심각성에 대한 조사·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료 사고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의료 사고 중 상당수가 투약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장에 영향을 주는 약은 그 용량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투약해야 한다. 용량을 과하게 투약하면 신부전 등이 생겨 전신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또 마약성 진통제를 잘못 쓰면 환자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항응고제를 과다 투여하면 위장 출혈로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심각성은 외부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약 부작용 사고 전문가인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2005년에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입원 환자의 10%가 약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통계이지만 호주는 2%, 미국은 6.1% 수준이다. 외국에서는 약 부작용으로 환자가 영구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약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의료 과오 밝혀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 부정확한 용량이나 엉뚱한 약물을 투여하는 사고가 병원에서 생길 수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사저널자료
 

 

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퍼진다. 블랙박스를 검사해서 사고 원인을 찾는다. 동시에 같은 기종의 비행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결함을 점검한다. 이런 조치가 의료계에도 필요하다는 점에 대다수 의료인이 동의한다. 그러나 비행기 사고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의료 현장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의료 과오를 모르거나, 알아도 밝히지 않는다. A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B병원에서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같은 병원이라도 옆 병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만 크고 작은 피해를 보는 셈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료 과오를 밝히지 않아서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의료인, 정부 관계자, 국회의원 등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이 나서기는 싫다고 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환자 안전 문제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이 1999년 펴낸 보고서가 도화선이 되었다. 연간 10만명에 육박하는 환자가 병원에서 죽어간다는 내용에 세계가 경악했다. 영국과 호주도 환자 안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도 연례 총회에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환자 안전 결의안을 채택하고 회원국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2004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10년 내 의료 개혁을 진행할 것을 천명하면서 그 첫 번째 목표로 환자의 안전 보장을 꼽았다. 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2005년 미국은 환자 안전에 관련된 법을 만들어 각 병원으로 하여금 환자의 안전사고를 보고하도록 했다. 그 사고에 대한 대안을 세우고 모든 병원에 전파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처방 전달 시스템(OCS),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 서비스(DUR)를 마련해두었다. 또 의료 기관이 의료 사고 전담 부서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환자 안전이 아니다. 약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판매 승인 취소가 목적이고, 의료 사고가 터졌을 때 수습하기 바쁘다. 전문가들은 의료 사건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첫 단추는 의료 기관이 의료 과오라고 보고하고 그것을 전체 병원이 공유하는 것이다. 김석화 환자안전연구회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은 “미국처럼 보고하는 개인이나 의료 기관을 무기명으로 해서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의료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의료 과오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만들어 모든 병원에 알려서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병원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전에 환자의 이용상 편의와 의료 기관의 시설·장비·인력 등 구조적 측면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영역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보험업계, 의료계, 보건의료 업체,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한다. 강영주 곽병원 간호부장은 “해마다 환자 안전 캠페인을 편다. 캠페인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다. 예를 들어, 투약 전과 후에 환자에게 약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행동을 다른 부서가 점검하고 환자에게 설문도 한다. 작은 행동이지만 환자 안전사고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출처: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