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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잘못 인정했다면 용서가 가능했던 사건

 

[기자수첩]잘못 인정했다면 용서가 가능했던 사건


2012.08.29 청년의사 김민아 기자

항암제 ‘빈크리스틴’ 의료사고 논란을 낳은 ‘9살 정종현군 사망사건’이 2년여간의 긴 법적 다툼 끝에 병원과 유가족 간 ‘종현이 사건 개요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병원에 부착하고, 2억2천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로 일단락됐다. 지난 23일 기자는 대구 종현이 집에서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를 만났다.

 

2년 3개월 동안 경북대병원을 상대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당차게 요구해왔던 강한 엄마였지만 그의 눈에는 시시때때로 눈물이 고였다. 빈크리스틴 의료사고 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병원 측과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해보지 않은 그였지만 2010년 5월 29일 온몸이 마비된 채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 아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더욱이 3년 1개월 동안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의료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했던 것도 마음 아팠다고 했다. 하지만 김영희 씨는 아이가 죽은 후 의료진들의 석연치 않은 태도가 계속 되고 병원 측에서는 법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소송을 결심했다고 한다.

 

의료분쟁 해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은 책 ‘쏘리웍스’에서 의료사고 소송 전문 변호사인 데이비드 패턴은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고 사과하는 선한 의사를 고소하는 법은 없다”며 “환자를 고립시키고, 무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의사들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말한다. 의료사고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고 후 병원과 환자 측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라는 것이다.

 

김영희 씨 또한 병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소송은 커녕 당사자를 용서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병원 측은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약물이 뒤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모호한 태도만 취하고 있을 뿐이다. 합의금으로 적지 않은 액수를 지불했음에도 관련 논문을 화장한 후에 전달하라고 한 교수와 병원은 철저하게 법 뒤에 숨은 채 최소한의 공식적 유감표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북대병원 측이 얼마 전부터 빈크리스틴을 수액과 섞어서 주사하도록 하고 혈액종양내과 전공의들이 응급실 당직을 서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으로 경북대병원은 더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년간 온갖 매체를 통해 병원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사건의 개요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글을 병원에 게시하겠다는 약속은 대폭 축소됐다. 항상 조심해야한다는 막연한 문구가 있는 안내문을 척추주사를 놓는 전공의들만 볼 수 있도록 따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사건 개요를 자세히 넣으면 현재 치료 중인 환자들이 공포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라고 한다. 김영희 씨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됐다고, 모든 아이들의 건강과 완치를 빈다는 구절을 넣어달라고 했어요"라고 전했다. 이런 조치가 정말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이기를, 이번 사건으로 경북대병원이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기를 바란다.

 

 

[출처: 코리아헬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