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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로 으르렁대는 의사-환자, 이렇게 웃기도 해요

 

서로 으르렁대는 의사-환자, 이렇게 웃기도 해요
종현이 사망사건 계기로 의사협회-환우회 이어준 종현이 엄마

 

2012.01.12 오마이뉴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종현이 엄마 김영희(37)씨가 백혈병환우회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지난 2010년 7월 말이었다. 30대 중반의 순진하고, 착하고, 여린 엄마였다. 아들 종현이는 2007년 4월 경북대병원에서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3년 동안 네 차례의 집중 항암치료와 열한 차례의 유지 항암치료를 꿋꿋하게 잘 마쳤다.


 

▲ 이별 여덟살 백혈병 어린이 종현이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내로 잘못 주사돼 하늘나라로 떠났다. 엄마 아빠가 종현이와 이별을 하고 있다.  ⓒ 김영희 제공 

 

종현이는 2010년 5월 19일 마지막 백혈병 치료인 12차 유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다. 문제는 이때 레지던트(전공의)의 실수로 정맥으로 주사돼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 내로 잘못 주사된 것. 종현이는 열흘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다 하늘나라로 갔다.

 

종현이 엄마는 내게 종현이와의 3년간 투병생활을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얘기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2010년 5월 28일 밤. 저희는 종현이가 하늘나라로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이때부터 종현이가 평소 좋아하던 동화책도 몇 권 읽어주고, 지난 9년 동안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얘기해줬어요. 그리고 '이가 하나도 안 썩어서 고마웠다, 엄마 아빠한테 밝게 웃어줘서 고마웠다, 할머니 말씀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 힘들었을 텐데 항암치료 잘 견뎌줘서 고마웠다'고 감사 인사를 했어요.

 

맥박이 200회를 넘었고 혈압은 40도 안 됐어요. 체온은 40.5℃가 넘어서 머리와 목·어깨에 얼음 수건을 채웠어요. 손발은 차갑게 식어 핫팩까지 했어요. 맥박이 200회와 0회를 오가며 요동치더니 종현이의 심장은 결국 멈췄어요. 저희는 종현이에게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하느님 품에 가서 편하게 지내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고 정말 사랑한다…. 이 세상에 너처럼 예쁜 아이는 없을 거야'라는 마지막 인사를 했어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막내 아들 정웅이가 떠올랐다. 내 아들 정웅이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종현이의 사망사건을 세상에 알리자

 

종현이 엄마는 종현이 사망 뒤에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인한 사망 사고가 종현이 한 명에게만 발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캐나다·영국 등 해외에서도 사회적 이슈가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더 이상 제2의,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내게 호소했다.

 

그때부터 종현이 엄마와 나는 종현이 사망 원인의 진실을 밝히고 나아가 빈크리스틴과 같은 위험한 의약품 투약 오류를 예방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정부와 의료계에 요청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5월 16일 <조선일보>에 '엉뚱한 곳에 항암주사 사망… 의료분쟁 잇따라'라는 제목의 기사(이지혜 기자)가 보도됐다. 종현이 사건에 관련한 첫 번째 보도였다. 이어 나는 5월 20일 <오마이뉴스>에 '9살 종현이, 병원에서 갑자가 죽었어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  종현이 빈크리스틴 투약오류 사망사건은 <조선일보>(왼쪽)와 <오마이뉴스>(오른쪽)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 조선일보/오마이뉴스 갈무리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종현이 사건은 유명해졌다. 종현이 사건은 투약 오류 사건과 병원 안전사고의 시청각적인 모델이 됐고, 많은 학자와 기자들에 의해 언급됐다. <오마이뉴스> 기고는 내게 두 가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했다.

 

하나는 언론사에 기고를 적극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나는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신분으로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었고, 메인 톱 기사로 두 번 정도 배치됐지만 조회수가 5만·8만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종현이 사건에 관한 내 기사를 읽은 이는 43만 명.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서 현재는 48만 명이 이 기사를 읽었다. 나는 종현이 기사 한 편을 쓰고 시민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칭찬과 원고료를 받았고, 무엇보다 종현이 엄마가 큰 위로를 받아 마음이 뿌듯했다.

 

또 하나는 노환규 현 대한의사협회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오마이뉴스> 보도 후 편집부에 전국의사총연합 노환규 대표가 종현이 부모를 돕고 싶다며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내게 종현이 부모님의 의사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나는 먼저 기자 몇 명에게 노환규 대표에 대해 물어봤다. 왜냐하면 당시 전의총 노환규 대표는 약사들과 한의사들을 무더기로 형사고발했고, 당시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을 비난하는 등 과격한 투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은 한결같이 노환규 대표를 종현이 부모에게 소개시켜 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 노환규 대표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었으니 당연히 그랬으리라.

 

그러나 나는 노환규 대표를 종현이 부모에게 소개했다. 의사가 환자를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종현이 사건은 의사라면 누구나 진실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진실을 은폐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나서는 것이 의료계가 환자로부터 신뢰받는 길이다, 종현이 사건은 부인하면 할수록 의사에 대한 불신의 벽만 높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의사단체 대표 의지하는 게 당연하지만...


 

▲  종현이 엄마 김영희씨는 동대구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 김영희 

 
솔직히 나는 나중에 종현이 부모를 노환규 대표에게 소개시켜준 것을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종현이 부모가 노환규 대표를 만나 뒤 종현이 부모와 나 사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22일 노환규 대표는 경북대병원 남문 앞에서 4시간 동안 '종현이의 사망의혹 진실을 밝히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종현이 부모도 이어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그런데 1인 시위는 며칠 안 돼 중단됐다. 노환규 대표는 하루만 하고 상경했고, 1인 시위 경험이 없는 종현이 부모는 동대구역사에서 며칠 시위를 이어가다 역 관계자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

 

노환규 대표와 종현이 부모, 어느 누구도 나나 백혈병환우회에 1인 시위를 한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1인 시위가 중단된 이후에서야 종현이 엄마는 내게 그간 과정을 이야기했고 나는 솔직히 많이 실망했다.

 

1인 시위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면 적어도 1개월 이상 해야 하고, 기대와 달리 시민들의 반응이 냉랭하기 때문에 반드시 단체에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결국 노환규 대표만 억울한 환자를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양심있고 용기있는 의사로 주목받았다.

 

나중에 종현이 엄마는 내게 사과했다. 의사들은 "법원에서 의뢰한 감정을 일곱 차례나 계속 거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인 노환규 대표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고, 1인 시위도 해주시고, 경북대병원장에게 합의 중재까지 해주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종현이 사망 사건, 환자·의사가 함께 해결했다

 

2012년 2월 말 MBC <시사매거진 2580>은 종현이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 사망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하기로 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방송을 앞두고 MBC는 파업에 돌입했다. 한 달 이내에 파업이 끝난 것이라는 해당 프로그램 임명현 기자의 말과 달리 파업은 6월이 돼도 끝나지 않았다.

 

파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지난 6월 27일 개최된 제1회 '환자shouting카페'에 종현이 엄마가 출연해 종현이 사연을 15분 동안 알렸다. 이날 종현이 엄마의 얘기를 들은 100여 명의 참석자와 사회를 본 최현정 MBC 아나운서는 모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함께 울었다. 다음날 언론에는 종현이 사건이 다시금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  김영희씨가 아들 종현이가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사망한 사연을 '환자shouting카페'에서 발표했고(위) 이후 이 사연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영됐다(아래).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지난해 7월 말 MBC 파업이 끝나고, 8월 19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의 '여덟 살 종현이의 죽음'이 방영됐다. 촬영이 시작되자 제37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던 노환규 회장은 종현이 사건의 의료 사고 개연성을 언론에 이야기했다.

 

여기에 경북대병원의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 사고가 전공의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 의해 발생했다고 판단한 전공의들이 종현이 부모에게 건넬 위로금을 모으는 운동까지 벌였다. 이에 대해 대구시의사회는 '의사의 수장이라는 의협 회장이 의사가 아닌 환자를 편든다'며 노환규 회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의료계 내부의 갈등 양상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환규 회장은 대구시의사회와 의료계 원로, 그리고 경북대병원 의료진을 설득해 8월 18일 종현이 부모와 경북대병원의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8월 20일에는 경북대병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종현이 부모에게 사과했고, 보상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문제는 이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된 10월 16일에 발생했다. 인천 가천의대 길병원에서 림프암 2기 진단을 받은 강미옥(41)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원인은 전공의의 실수 때문이었다. 종현이와 같이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정맥이 아닌 척수강 내로 잘못 주사해 강미옥씨가 13일 만에 사망했던 것이다.

 

이후 환자단체연합회가 중심이 돼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노환규 회장은 전공의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설립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자·의사, 함께 웃으며 행복하면 좋겠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병원내 환자안전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2012년 한 해 나는 노환규 회장과 성범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의사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일명 '의사 도가니법'과 '만성질환관리제', '의료분쟁조정중재원', '7개 질환 포괄수가제' 등 여러 가지 이슈로 대립했다.

 

이러한 이슈 대응을 할 때마다 노환규 회장에게 어떤 때는 참 섭섭했고 어떤 때는 참 미안했다. 노환규 회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환규는 대한의사협회 회장으로, 나는 환자 운동가로 의사를 위해, 환자를 위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26일 '환자shouting카페 후원의밤' 행사에 노환규 회장이 참석했다. 행사 끝나고 바로 가지 않고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기 전, 나와 종현이 엄마, 그리고 노환규 회장은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기념사진을 보니 '사진이 참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환규 회장(맨 오른쪽)과 내(맨 왼쪽)가 서로 웃으며 사진 찍을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준 종현이 엄마가 고맙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나와 노환규 회장을 만나게 했고, 서로 이해가 다를 수 있는 집단을 위해 일하지만 이렇게 서로 웃으며 사진 찍을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해준 종현이 엄마가 너무 고맙다. 2013년 에는 이렇게 환자와 의사가 함께 웃으며 행복하면 좋겠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