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안전법 만들어, 의료 기관이 자발적으로 보고할 수 있게 해야”
미국 보스턴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 인터뷰
2011.01.19 시사저널 노진섭 기자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은 환자 안전 문제 전문가이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국내외 환자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환자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 ‘안전’의 범주가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 양로원, 가정 방문 치료 등 의료와 관련된 모든 환경을 환자 안전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진단이나 치료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을 의료 과오(medical error)라고 한다. 의료인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에 의해 환자가 상해를 입는데, 이를 위해 사건(adverse event)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해가 발생하는 사고가 생긴다. 환자가 입는 상해는 가벼운 부작용부터 사망까지 다양하다. 상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큰일 날 뻔한 경우(근접 사고)까지 포함하면 현재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 과오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위해 사건의 75%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아무도 드러내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똑같은 위해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
한국을 포함해 유럽, 호주, 미국 등 각국에서 공통으로 발생하는 위해 사건은 수술, 투약, 병원 내 감염으로 생긴다. 위험도가 높은 수술(심장 수술, 폐 수술, 관절 대치 수술)과 위험도는 낮더라도 많이 하는 수술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수술 부위가 감염되거나, 혈전증·폐렴 등에 걸리는 것이다. 심지어 폐 수술할 환자에게 위장 수술을 하는 사례도 있다.
투약 과정에서는 투약 자체를 빠뜨려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또 처방한 약이 아닌 엉뚱한 약을 환자에게 투약하거나, 환자에게 맞지 않은 용량을 환자 몸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용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기(infusion pump)를 사용하는데, 이를 잘못 조작해서 10ml 투약해야 할 환자에게 100ml를 투약하기도 한다. A에게 줄 약을 B에게 투약하는 사례도 있다. 병원 내 감염은 폐렴, 창상(상처 감염), 패혈증, 요도감염, 대장염(항생제 과용에 의한) 등이 흔하다.
병원 내에서도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 따로 있는가?
대부분 수술실, 병실, 응급실에서 발생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위해 사건의 39.5%가 수술실에서, 21.6%가 병실에서 일어난다. 그중에서 의료 과오, 즉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각각 18.1%와 45.8%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4만4천~9만8천명이 의료 과오로 사망한다. 매일 여객기 한 대가 추락하는 셈이고, 교통사고나 에이즈로 사망하는 사람 수보다 많다.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는가?
한국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의료계에서 더 큰 문제는 현황 파악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등이 사용한 분석법을 한국에 적용시켜보았다.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미국과 호주의 분석법을 대입해보았더니 연간 1만5천~4만명이 위해 사건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 한 대가 매일 한강으로 곤두박질치는 셈이다. 여기에 가벼운 부작용, 상해, 장애를 입은 사람 수까지 고려하면 환자의 안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는 관련 조사 자료가 없어 추정한 결론이지만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병원은 연합심의위원회(JC)의 환자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한다. 병원마다 해마다 50~70가지 지표 항목에 대한 심의를 거쳐 인증을 받고 있다. 이를 받지 않으면 보험 혜택에 제한을 두는 것과 같은 제재를 가한다. 환자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병원에 가지 않으니 병원으로서는 인증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 병원은 자발적으로 의료 과오를 정부 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의료 과오의 책임을 묻자는 것이 아니므로 병원은 무기명으로 보고할 수 있다. 의료 과오의 대책을 만들어 전체 병원에 고지해서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한국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은 의료 사고가 터진 후에 봉합하기 바쁘다. 쉬쉬하면서 어물쩍 넘어가거나 환자가 의료 사고 사실을 알고 항의하면 합의하는 수준이다. 한국이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되려면 치료 성과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 사고를 예방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현황 파악이다. 심각성을 인식해야 정부와 의료 기관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에는 전국적으로 보건소가 있다. 또 IT 강국이다. 환자 안전에 필요한 인프라는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보건소 망을 이용해 환자 안전에 필요한 기초 조사를 하고 인증 지표도 만들 수 있다. 이를 인터넷망을 통해 전국 병원에 통보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을 진행하는 환자안전청을 만들어 환자 안전에 대해 연구하고 지표나 인증 제도도 갖추면 환자 안전 문제를 지금보다 많이 보강할 수 있다. 또 의료 기관이 자발적으로 사건을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료 기관의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 안전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출처: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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