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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환자안전법

[내일을 열며-이기수] 환자 안전법

 

2014.08.22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기자

 

 

환자 안전관리 문제를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환단연)이 지난 18일부터 시작한 일명 ‘환자 안전법’ 제정 1만명 문자청원운동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휴대전화 문자로 ‘지역/이름/서명 댓글’을 써서 지지 의사를 표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서명 현황은 환단연 홈페이지(www.kofpg.kr)에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22일 오후 6시 현재 벌써 1481명이 동의한 상태. 환자 안전 문제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1999년 연간 10만명에 육박하는 환자가 미국 내 병원에서 크고 작은 위해사건으로 죽는다는 내용의 충격적인 의료사고 현황 보고서를 펴내면서 이슈가 됐다. 미국은 결국 2005년 의료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개선법’을 만들었다. 영국과 호주도 즉각 조사에 착수하고, 환자 안전 전담 관리 기구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우리는? 의료기관 인증제 실시 외엔 뚜렷한 게 없다. 그나마 모든 병·의원이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물론 의료사고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실태를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전적으로 환자의 안전만을 도모하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피곤하면 수술 부위를 봉합할 때 바늘도 한 번 덜 꿰매게 된다. 약을 처방하는 과정에서도 사고가 있다. 환자가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 약들이 있다. 그런 걸 처방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경고 표시가 뜬다. 그런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그걸 못 보는 경우도 있다. 그걸 환자가 먹게 된다.” “택시 운전기사도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라고 하면 사고가 날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내과는 특성상 시술을 많이 한다. 척수 쪽으로 약제를 투입하기도 하고, 폐에 물이 차면 바늘이나 기구를 써서 뽑아낸다. 특히 이런 일들은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낮에는 일이 많아 레지던트들에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하면 지쳐서 대충 하게 된다. 그러면 사고가 난다.” “정규 시간에는 약사가 항암제를 섞는 일을 하는데 휴일이나 밤 시간에는 인턴이나 간호사가 그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걸러줄 사람이 없다. 때때로 항암제 조제 과정에서 에러가 생기는 이유다.”

 

해당 병원에 치료를 맡긴 환자와 그 가족들이 들었다면 모두 ‘억장’이 무너질 말들이다. 남의 나라 사례가 아니다. 얼마 전 한 시사주간지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전공의들이 털어놓은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현주소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이 외부는 물론 내부에조차 알려지지 않고, 대부분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사고 경험을 공유, 반면교사로 삼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행기 추락사고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블랙박스를 검사해 사고 원인을 찾는다. 동시에 같은 기종의 비행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결함을 점검한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당국에서 전국적인 오류보고 체계를 만들어 분석, 같은 유형의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가.

 

의료계에도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 A병원의 사고 경험을 B병원도 공유해야 한다. 심지어 같은 병원이라도 옆 병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A병원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사고가 A병원은 물론 B병원에서 또 발생하지 않게 막을 필요가 있다.

 

환자 안전법은 의료 현장에서 이 같은 사건 사고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특히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 첫 단추는 병원 내부 신고자를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일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이 꼭 결실을 거두게 되길 바란다.

 

 

[출처: 쿠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