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병원 만들기... 이게 과한 요구인가요?
종현이 엄마 김영희씨가 환자안전법 제정운동 시작한 이유
2014.07.25 오마이뉴스 김연희 기자
"오는 25일 환자안전법이 국회 심의에 들어간다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환자안전법에 대해 공부하는 단계이지만 오제세, 신경림 의원님이 법으로 만들어주신다고 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좋은 법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김영희씨는 "법안을 봤는데, 사람을 살리기 위한 법이었고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발전된 법안이었다"면서 "이번 법안소위에서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고 환자안전법의 빠른 제정을 기원했다.
제2의 종현이를 막기 위해 시작
김영희씨는 종현이 엄마다. 아홉 살 정종현군은 2010년 5월 백혈병 치료가 끝날 무렵 정맥에 맞아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의료진의 실수로 척수강 내에 잘못 투여받아 극심한 고통 속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종현이 엄마는 아들과 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빈크리스틴 투약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가 종현이 사건 이후에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환자단체들과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다.
▲ 처음에는 자신의 겪은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동대구역에서 1인 시위를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그냥 살다가 이 일을 했다면 힘들어 했을 거예요. 외친다고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니고 늘 부탁하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아이를 떠나보낸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더 미안할 것 같았어요."
아이를 잃고 정신적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주변에서 '해봤자 소용없으니 그만두라,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조언을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부정적 이야기에도 이 일에 매달렸다.
처음부터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가슴 아픈 사연을 세상에 드러내기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동대구역에서 피켓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다. 다행히 지나가는 시민들이 말을 건네주고, 사연에 공감해주면서 점점 더 기운을 얻었다.
가장 위안을 받았던 곳은 환자단체연합회가 주최한 '환자샤우팅카페'였다. 이전에도 방송이나 언론에서 취재를 했지만 단신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하지만 '환자샤우팅카페'는 달랐다. 자신이 진정하고픈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다.
종현이 엄마는 "같이 얘기해 주는 사람보다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받는데, 환자샤우팅카페가 그랬다"며 "그때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그날의 기억을 말했다.
공청회나 세미나에서 실망을 하기도...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후,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더라고요. 단순히 투약 매뉴얼만이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자들도 환자안전법을 꼭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요."
절실한 마음이 많다는 것을 알고 각오를 다졌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종현이에게 엄마로서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기도 했다. 주변에 '환자안전법'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소해 했지만, 막상 이해를 하면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씨는 세미나나 공청회에서 ‘예산, 법 실행상의 문제점을 들어 딴죽을 거시는 사람들을 만날 때, 아예 시기상조 법이라고 전문가들이 못을 박을 때’면 실망을 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 환자단체연합회
물론 쉽지는 않았다. 실망한 적도 있었다. 공청회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면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특히 예산, 법 실행상의 문제점을 들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을 만날 때, 아예 '시기상조법'이라고 전문가들이 못을 박을 때 정말 화가 났다고 한다. 병원계 등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아팠다.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종현이가 어리고 우리가 차상위 계층이어서 국가에서 의료비를 지워해줬거든요. 그런데 의사의 순간 실수로 아이 생명을 잃은 거잖아요. 국가적으로 봤을 때 살리려 했던 국민이 죽은 셈이죠. 그러면 그동안 치료비로 들어간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거잖아요. '환자안전법'에 부정적인 분들은 이런 손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종현이 엄마는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시는 분들은 '피해자는 피해자'이고 '환자안전법은 환자안전법', 이렇게 별개로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며 "오히려 환자안전법으로 피해자를 줄이는 것은 국민을 살리는 것이자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기적 같았던 1만 명 문자청원
보람된 순간도 있었다. 1만 명 문자청원 운동이 그것이다. 8개월 동안 했는데, 초기 3개월에 약 2000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 달 동안 8000명을 채웠다. '환자안전법' 공청회에 맞춰 달려온 결과였다.
1만 명 문자청원이 그저 쉽게 얻은 결과물은 아니다. 먼저 문자청원 자체가 낯선 운동이었다. 종이로 서명 받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거리로 나간다고 이루어지는 운동이 아닌 셈이다. 예전에 종현이와 살던 동네 성당을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거기서 그는 종현이를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종현이 장례까지 도와주셨던 분들이어서 그런지 모두들 흔쾌히 동의해줬다.
▲ 온라인을 통한 문자청원 운동을 했는데 신종사기라는 오해로 한동안 속병 앓아야 했지만 그래도 네티즌들의 자정운동 결과로 1만 명 서명을 받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 환자단체연합회
주변이 모두 나섰지만 숫자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자청원은 100명에게 홍보를 해야 1~3명 정도 답변이 올까 말까한 방식이다. 온라인 활동을 해야 했던 이유이다. '네이트 판, 다음 아고라' 등에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았다. '서명했어요'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마음을 졸이면서도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네이트판에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013으로 글 올리는 것은 찜찜하다. 요즘 신종사기도 많은데'라는 댓글이 달렸다. 문제는 베스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베플'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베플이었던 것. 베플은 늘 댓글 최상위에 위치해서 뒤로 밀리지도 않는다. 이때부터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없는 사실이 부풀려지기도 했다. 신종 전화사기 아니냐는 험악한 소리도 난무했다. 결국 김씨는 국회 공청회 때 초대한다는 공문을 올렸다.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댓글에서 자정효과가 나타났다.
"논쟁이 결과적으로는 긍정적 역할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고, 왜 이렇게 싸우는지에 대해 알려고 제가 올린 글을 꼼꼼히 읽어보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환자안전법'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셈이죠.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더 늘린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무책임한 댓글 때문에 억장이 무너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1만 명이 다 찬 것은 기적이었다. 작년 4월 9일 공청회가 열리는데, 4월 7일 모두 채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종현이 엄마는 그때 '환자안전법'이 제정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흡족했다고 한다. 당시 1만 명 서명을 기념하기 위해 환자단체연합회에서 1만 명 서명이 들어간 액자를 만들었고,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환자들이 안전한 병원을 만들어줬으면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아직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는 종현이 엄마 김영희씨. 그러나 그 누구보다 이 법이 자신의 아들과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양이라는 동물은 발만 보고 나아가니까 길을 잘 잃는다고 하네요. 의사 선생님과 병원 관계자분들에게 자기 눈앞의 이익만 챙기면 나중에 환자들이 그분들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환자를 안전하게 해달라는 것은 병원을 안전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잖아요. 병원이 안전해지면 믿고 더 찾게 되는 거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환자들이 자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병원에 순위를 매겨 항상 가는 병원만 가는데, 병원이 더 안전해지면 그런 현상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종현이 엄마는 "의사와 병원이 환자안전을 향해 함께 동행하는 사회가 이루어졌으면 한다"면서 "이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환자안전법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환자안전법 법안 통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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