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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환자안전법, 환자 참여로 만들자

 

[기고] 환자안전법, 환자 참여로 만들자


2013.03.13 내일신문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내일신문]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환자안전(patient safety),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아직 생소한 용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연간 죽지 말아야 할 환자 1만8000여명이 병원에서 안전사고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환자안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6000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거의 3배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 5월 19일, '환자안전'을 우리 사회에 중요한 아젠다로 부각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종현이 사건'이다. 종현이는 백혈병 투병중인 아홉살 어린이였다. 2007년 4월 백혈병 진단을 받고, 3년간 총 16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17차 항암치료만 받으면 완치되는 상황이었다.

 

이 마지막 항암치료을 받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맥에 주사해야 할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를 의료진이 실수로 척수강 내로 잘못 주사한 것이다. 종현이는 열흘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고 결국 사망했다.

 

1만7000명 이상 살릴 수 있는 '신약'과 같은 효과

 

종현이 부모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빈크리스틴'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검색을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사망한 백혈병 어린이가 우리나라에서 4명이나 있었고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종현이 부모는 제2의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

 

먼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소송부터 시작했다. 다음으로 보건복지부장관에서 빈크리스틴 투약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청원을 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는 상세한 빈크리스틴 투약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의 병원에 공문으로 발송했다. 언론에 우리나라 환자 안전사고 실태보도를 요청했다.

 

지난 대선 후보들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환자안전법' 제정안 발의를 요청했다. 종현이 부모의 이러한 3년간의 희생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최근 정부와 국회가 '환자안전법' 제정 논의에 들어갔다.

 

기적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도 연간 300여명의 환자밖에 살리지 못한다. '중증외상센터'가 선진국 수준으로 생겨도 연간 3500여명을 살리는 데 그친다. 하지만 병원들이 환자 안전사고 예방시스템을 갖추고 안전사고 정보를 공유해 대처한다면 연간 1만7000명을 살릴 수 있다. 이는 매년 1만7000명이상을 살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에 버금간다.

 

병원에서 투약 오류, 감염, 낙상 등의 환자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면 많은 의료인력과 막대한 시설투자가 필요하다. 모든 재원을 병원이 자체 부담하도록 강제하기보다는 정부지원을 통한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료진이 병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신속히 보고하는 제도, 이 보고내용을 전체 병원과 의료진이 공유하고 공동 해결방안을 찾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다. 이것들이 '환자안전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다.

 

"저 이름이 뭐죠? 이 약 용량이 정확한가요?"

 

병원에서 환자 안전사고 예방활동은 주로 의사 약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병원 직원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환자와 환자보호자의 참여도 중요하다.

 

의사가 아무리 열심히 손을 씻어도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손을 씻지 않으면 병원 감염을 막을 수 없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낙상 예방교육에 환자가 참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의사나 간호사가 투약할 때 환자 동일 여부, 처방된 약이 맞는지 여부, 처방약의 용량이 정확한지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지만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먼저 물어볼 수도 있다. "저 이름이 뭐죠? 이 약 이름이 뭔가요? 이 약 용량이 정확한가요?" 등등

 

'환자안전법' 제정은 시급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병원 직원들뿐만 아니라 환자와 환자보호자도 병원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출처: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