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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환자가 안전하면 의사는 행복해진다

[청만사] 환자가 안전하면 의사는 행복해진다
초대 환자안전연구회 회장 맡은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김석화 교수

 

2013.04.01 청년의사 김민아 기자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김석화 교수가 소규모 연구단체에서 본격적인 연구회로 거듭 난 환자안전연구회 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표적인 국립대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회장을 맡았다는 것은 ‘환자안전’이 의료계에서 더 이상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공식적인 화두로 등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김 교수를 만나보니 오히려 일찌감치 환자안전에 관심을 가진 ‘얼리어답터’에 가깝다.

 

그가 처음부터 환자안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의학교육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의료정보에 눈을 돌리게 됐고 환자안전이라는 개념까지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가 환자 안전에 관심을 가진 단초는 1987년 서울대교수 임용.

 

“서울사범학교를 나오신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의대 교수가 됐다는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가르치는 게 뭔 줄 아냐고 물으세요. 그래서 선생님들 하는 것처럼 흉내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답했죠.”

 

교육이 그런 게 아닐 텐데

 

42년 동안 교직에 계셨던 어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게 아닐 텐데.” 무심히 지나쳤던 어머니의 말이 다시 떠오른 계기는 내과 민원기 교수의 정년퇴임식이었다.

 

“정년퇴임 연설에서 그러시더군요. 실습학생들이 길 잃은 양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제발 선생님들이 손을 붙잡고 하나하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구요. 그 얘기를 들으니 어머니 말씀도 떠오르더군요.”

 

교수로 임용되면 의학교육 연수원에서 3일 동안 교육 원칙과 교수법 등을 배운다. 현장에서 만나본 학생들은 이런 원칙을 일괄적으로 적용시키기 힘들 정도로 저마다 달랐다. 우선 그 자신부터 문제였다.

 

“하나 던져주면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패스트러너가 있고 책을 한 권 읽어도 곱씹으면서 이해하는 슬로우러너가 있어요. 저처럼요, 하하. 슬로우러너가 패스트러너를 따라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김 교수가 찾은 답은 e-learning이었다. 속도도 반복도 학생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e-learning에 대해 발표하던 곳은 주로 의료정보학회였다. 그러다보니 의료정보라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고.

 

환자안전, 의사-환자 모두를 위한 펜스

 

“의료정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환자안전이더라고요. 의료의 3대 기본요소가 안전함, 효과, 적정한 가격이에요. 얼마 전 다녀온 일본재생의료학회에서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력으로 재생의학을 내세우는데 그들도 이 세 가지, 특히 안전을 가장 강조하더군요.”

 

환자안전연구회가 몇몇 관심 있는 연구자들의 관심으로 근근히 이어지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도 의사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괜한 것을 들쑤셔서 논란을 만든다는 불편함이 아닐까.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부분의 의료사고가 덮고 보자는 병원 측의 대응 때문에 더 논란이 커진 것을 떠올려보면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는 것도 현실일 터다. 게다가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 의사도 인간, 그러니 의사도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시작되는 환자안전 개념이 의사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김석화 교수는 이런 걱정이 말 그대로 ‘기우’고 오해라고 설명한다.

 

헛똑똑이를 바른 똑똑이로 만들기

 

우선 예전처럼 의사의 한 마디에 무조건 수긍하는 보호자도 없고, 의사 입장에서는 점점 고려해야하는 것이 많아진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보다는 ‘더 잘 살기 위해서’ 병원에 오는 경우도 많고, 환자에게 적용할 시술이며 약물도 더 많아진다. 선택의 여지도 많아지고 ‘환자안전’에 문제가 생길 길도 많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의 ‘권위’를 말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김 교수는 생각한다. 다만 조금 더 ‘의료지식을 아는’ 의사가 환자를 도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요즘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환자들이 의사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의사들을 다그치고 항의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과도한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요. 얼마 전 은퇴하신 어느 교수님이 외래보고 오시더니 요즘 외래는 전문의 구술시험 같다고, 보호자들이 물어보는 것도 많고 또 대답하기 어려운 것만 물어본다시더군요. 저 역시 같은 느낌이에요. 환자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헛똑똑이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젊은 부모(그는 소아환자들을 주로 본다)들에게 ‘제가 아는 한은’, ‘저라면 이렇게 하겠다’고 많이 얘기하죠.”

 

첫 걸음을 떼다

 

환자안전의 출발은 환자도 의사도 ‘의사는 불완전한 존재고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절대 의사의 신뢰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의사 개인의 실수를 시스템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면 의사도 환자도 좋은 일이다.

 

“요즘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보상비용이 억대예요. 병원 이익률이 5%인데 1억 물어주려면 20억 매출을 더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병원장들에게도 그렇게 접근해요. 환자안전 시스템을 도입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이라고.”

 

비슷한 의미에서 환자안전을 담당하는 정부기관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같이 의료사고 처리를 다루는 정부기관이 먼저 생긴 것은 좀 안타까운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환자안전법이 제정돼 환자 안전과 관련된 여러 법을 근거로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있다. 지난 2004년 부시 대통령이 10년 계획으로 의무기록을 전자화하겠다는 것을 발표했다. 2014년이 되면 의사들에게 주던 EMR 인센티브도 중단된다고 한다. 전자 차트를 통해 오독으로 인한 의료 실수를 줄이겠다는 프로젝트가 10년을 두고 진행돼온 것이다. 김 교수는 정권과 관계없이 의료정책을 꾸준히 밀고나가는 미 정부의 태도가 무척 부럽다.

 

“구체적이잖아요. 우리나라 정책 방향 제시를 보면 추상적이라 현장에서는 답답할 때가 많죠.”

 

새롭게 출범한 환자안전연구회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환자안전법 제정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김석화 교수는 이번 환자안전연구회 창립총회를 ‘첫 걸음’이라고 표현했다. 앞으로 학회로 자리잡고, 환자안전청이 정부기관으로 당당히 설치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출처: 청년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