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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병원서 갑자기 죽은 9살 종현이... 법 제정될까

병원서 갑자기 죽은 9살 종현이... 법 제정될까
백혈병 치료도중 사망한 정종현군 어머니, '환자안전법' 제정 위해 1만명 서명 받아

 

2013.04.08 오마이뉴스 조정훈 기자


 

 

▲  지난 2010년 백혈병으로 경북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정종현군의 사진. 이 사진은 경북대병원 소아과병동에 걸려 있다.  ⓒ 김영희  

 

 

"종현이는 완치율이 90% 이상으로 높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종현이는 이미 죽어서 이 법이 필요없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지난 2010년 5월. 백혈병을 앓던 정종현(9)군이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 목숨을 잃었다. 의사의 실수로 주사를 잘못 맞는 바람에 10일동안 고통을 호소하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레지던트 1년차였던 의사가 척수내강에 투입해야 할 '시타라빈' 대신 정맥에 주사해야 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실수로 척수에 주사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9살 종현이, 병원에서 갑자기 죽었어요)

 

6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은 종현이는 완치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치료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 항암치료를 앞두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두 항암제는 무색투명하기 때문에 구분을 하기 위해 하나는 주사로, 하나는 병으로 가져와 투여해야 했지만 둘 다 주사로 가져와 투여하는 바람에 실수를 한 것이다.

 

종현이 부모는 병원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병원측은 주사는 제대로 투여했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2년간의 소송을 진행하고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종현이처럼 죽어간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이때 확인했다.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38)씨는 "종현이가 척수주사를 맞고 다음날 너무 고통을 호소하니까 상부에 보고가 들어간 것 같았다"며 "병원측에서 종현이의 척추검사를 한 번 더 해보고 싶다고 해서 허락했는데 몰래 세척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가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이후 범죄행위가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병을 치료할 때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치료하는데 의료사고가 나면 제일 가능성이 없는 것을 가지고 사고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다 알고 의문을 제시해도 비전문가라는 이유로 외면했다"고 종현이 사고 당시의 경험을 토로했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해 '환자안전법' 필요

 

▲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고 정종현군의 어머니 김영희씨가 환자안전법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이후 종현이 부모는 제2, 제3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 제정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환자안전법은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그 사실을 국가에 보고하고 국가에서는 실수인지 시스템 오류인지 분석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 병원에 정착시키는 법이다.

 

김영희씨는 지난해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한 문자청원운동을 시작으로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에 앞장섰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가 다시는 종현이와 같이 실수로 인한 의료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청원운동 동참을 설득했다.

 

종현이의 사고는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니라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 매뉴얼로 인한 사고였다며 보건복지부에 청원을 해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가 상세한 빈크리스틴 투약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의 병원들에 공문으로 발송하고 조치하는 성과도 있었다.

 

환자안전법에 대한 문자서명을 받기 시작한 지 1주일만에 무려 2000여 명이 서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서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희씨는 "우리는 사고를 인정하고 재발방지가 목적이었는데 아는 사람은 서명을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문제로 몰아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며 서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아쉬워했다.

 

다시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이 시작된 것은 올해 2월 오제세(민주통합당)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만나면서부터다. 김영희씨는 오 위원장을 만나 종현이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병원과는 어떻게 합의하게 되었는지,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등을 이야기하고 용기를 얻었다.

 

김영희씨는 3월부터 다시 문자서명을 받기 시작해 3주 만에 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지난해 받은 서명을 합쳐 8500명이 넘었다. 당초 1만 명을 목표로 했던 서명은 8일 현재 목표를 넘어선 상태다. 김영희씨는 '1만 명 서명'을 목표로 했던 것은 하나의 상징성이라고 말했다.

 

"한 병원서 일어난 사고 공유하는 게 핵심"... 9일 국회서 토론회 열려

 

한편 김영희씨가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문자서명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013으로 시작되는 번호에 대한 오해였다. 생소한 번호여서 어떤 사람은 스팸이나 피싱으로 생각하고 악플을 달기도 했다. 김씨는 "내가 신원을 밝혔는데도 013이라는 번호만 보고 신종 사기라고 악플을 다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의료사고는 실수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 뒤에 숨기려는 것은 범죄거든요. 환자를 치료하는 고귀한 영혼을 가진 의사가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의사한테도 환자안전법이 필요해요."

 

김영희씨는 "외국에서는 의료사고가 나면 국가에 보고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착시킨다"며 "한 병원에서 일어난 사고라 하더라도 모든 병원에서 공유하도록 하는 게 환자안전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의료시스템 미비로 인한 오인사고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에 따르면 매년 병원에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하는 환자사고는 사고를 당한 환자 10명 중 1명 꼴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환자안전관리를 하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그 비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  지난 2010년 경북대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다가 의사가 실수로 주사를 잘못놓아 사망한 정종현군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환자안전법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환자안전법 서명을 받고 있는 SNS 전화번호.  ⓒ 김영희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신관 2층에서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토론회가 열린다. 국회보건복지위원장실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토론회는 오제세 위원장이 김영희씨를 만난 후 개최하는 것이다.

 

김영희씨는 이 자리에서 환자안전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 어머니의 입장에서 호소하고 서명을 받은 1만여 명의 명단을 보건복지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종현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종현이가 마지막 치료를 받았던 경북대병원 소아과 IV처치실에는 종현이의 사진과 함께 영문으로 된 사건 개요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종현이와 같은 불행한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담았다.

 

"모든 어린이의 완치와 건강을 기원합니다. 정종현"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