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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종현이를 위해

[김호의 궁지] 종현이를 위해

2013.06.17 한겨레신문 김호(더랩에이치 대표)

 

 

사례 1. 2006년 미국 손해배상개혁위원회에 의하면 일리노이주립대 병원은 미국에서 4번째로 의료 소송이 많이 일어나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 병원이 불과 2년 만에 의료 과오로 인한 소송을 절반으로 줄였다.


사례 2. 미시간대학 병원은 의료 과오로 인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걸리던 평균 시간을 20.3개월에서 9.5개월로, 평균 비용도 건당 4만8000달러에서 2만1000달러로 줄였다. 손해배상청구 건수도 2001년 266건이던 것이 꾸준히 줄어 2007년에는 83건으로 줄었다. 2년 전 방한했던 담당자 말로는 지금은 의료 과오로 인해 법적 소송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병원들은 어떤 정책을 시행했기에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들은 의료 과오 앞에서 적절한 사과와 잘못을 공개하는 ‘진실 말하기’(disclosure)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프로그램 골격은 단순하다. 먼저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은 유감의 뜻을 표현하고 ‘투명’하고 ‘신속’한 조사를 약속한다.

 

여기에서 투명하다는 것은 환자 쪽이 지정한 의료진이나 변호사 등이 조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며, 신속하다는 것은 일리노이대학의 경우 조사는 72시간 안에 완료하고, 모든 문제를 60일 안에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조사를 통해 의료진의 과오가 드러나게 되면, 이번에는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를 환자 및 가족들에게 하고, 병원 쪽이 직접 환자 쪽과 보상책을 논의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해 환자가 굳이 법정까지 사건을 가져갈 이유는 없어진다. 일리노이대 의료원에서는 의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40건 중 단 1건만이 소송으로 연결되었을 뿐이다. 존스홉킨스, 하버드, 스탠퍼드 등 미국 최고의 병원들 역시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병원 의료진의 과오와 환자들과의 소송을 줄여가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데는 정부 정책도 한몫을 한다. 진실 말하기에 대한 책 <쏘리 웍스>를 보면,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는 1986년 의료진의 사과 행위가 법정에서 의료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였고, 30개 주 이상에서 채택했다.


미시간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환자 쪽을 대리하는 변호인이 병원을 상대로 해 소송을 계획할 경우 6개월 전에 소송 의도를 미리 병원 쪽에 알리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소송으로 가기 전에 되도록 병원과 환자가 미리 해결하고 합의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이다.


2010년 급성백혈병을 앓던 9살 정종현군이 의료진의 명백한 과오로 숨졌다. 종현이 부모는 의료 과오를 은폐하려고 한 병원과 2년 넘게 힘겨운 싸움을 했다. 결국 2012년 병원은 합의금 2억2000만원에 자신들이 저지른 사고에 대한 개요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게시물을 병원 안에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종현이의 어머니인 김영희씨는 <청년의사>와 한 인터뷰에서 세상을 떠난 종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종현아, 엄마가 이렇게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마음이 좀 편해도 되겠지. 네가 살아 있었으면 훌륭한 일 많이 하도록 키웠을 텐데. 환자안전법이 ‘종현이 법’이라고 불린다고 들었는데 네가 살아서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고 엄마, 아빠가 꼭 만들 수 있도록 해줄게.”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 토론회가 열려 종현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장은 공감과 지원을 약속했다. 또다른 종현이를 만들지 않도록 힘을 가진 정치인들이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지 기대하고 지켜볼 예정이다.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