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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엉뚱한 곳에 항암주사 사망… 의료분쟁 잇따라


엉뚱한 곳에 항암주사 사망… 의료분쟁 잇따라

정맥에 주사해야 할 약을 척수강에 놓으면 사망 불러
일부 대학병원 제외하곤 대부분 체크시스템 안갖춰

 

2011.05.16 조선일보 이지혜 기자


반드시 정맥에 주사해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척수강(척추 내에 신경다발인 척수가 지나가는 관)에 주사하면서 환자가 숨지는 이른바 '빈크리스틴 사고'로 보이는 의료 분쟁이 또다시 발생했다.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던 정모(당시 8세·대구)군은 지난해 5월 주사를 맞은 후 열흘 만에 숨졌다. 정군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다 지난해 5월 19일 저녁 21번째 항암주사를 맞았다. 6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정군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두통과 엉덩이를 쥐어뜯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고, 다리에서 시작한 마비가 전신으로 번지면서 결국 사망했다.

 

 

[이미지-조선일보]

 

정군의 어머니(35)는 원인을 찾다가 백혈병 환우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들과 일치하는 사례를 발견했다. 어린 백혈병 환자가 정군처럼 빈크리스틴 주사를 맞고 숨진 경우가 또 있었던 것이다. 빈크리스틴을 실수로 척수강에 주사할 경우 환자는 심각한 신경 손상 때문에 결국 사망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의학 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정군을 치료한 의료진은 "증상이 같다고 잘못 주사했다는 것은 아니다"며 어떤 실수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정군의 부모는 지난해 7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빈크리스틴 사고 잇따라

 

빈크리스틴은 1961년부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무색 항암제다. 소아백혈병이나 악성 림프종뿐만 아니라 성인의 암에도 자주 쓰이는데 반드시 정맥주사해야 한다. 척수강으로 주사할 경우 이 약은 척수액을 따라 흐르면서 중추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전신마비를 일으킨다. 일단 척수강으로 약이 들어가면 환자는 대부분 열흘 이내 사망한다.

 

문제는 많은 암 환자들이 두 가지 이상의 항암제 주사를 같은 날 맞는다는 점이다. 정군도 척수강으로는 다른 항암제인 시타라빈을, 곧이어 정맥으로 빈크리스틴을 맞게 돼 있었다. 만일 두 약이 서로 바뀌었다면 정군의 죽음은 쉽게 설명 가능하다.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들어간 사고는 해외에서도 여러 번 있었다. 1982년 국제신경학회지에 이스라엘 케이스가 보고됐고, 영국에서도 십수건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1997년 등 세 차례에 걸쳐 4∼7세 백혈병 환자들이 연이어 숨지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국내에서도 2003년 대한신경과학회지에 여자 백혈병 어린이 사례가 나와 있고, 2009년에도 사고가 났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매년 한두 건 이상 빈크리스틴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드문 탓이다.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국제의료기관인증(JCI)을 받은 세브란스병원은 항암제 사고를 막기 위해 이중·삼중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빈크리스틴을 처방한 의사 컴퓨터에는 '반드시 정맥주사'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고, 항암제를 조제하는 전문 약사가 용량 등을 거듭 확인한 후 '반드시 정맥주사'라는 주의표를 달아 주사실로 내려 보낸다. 또 어린이 백혈병 환자의 경우 아예 빈크리스틴 주사를 맞는 날에는 다른 항암제 주사를 맞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병원은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 정도에 불과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 유철주 교수는 "의료진 개인의 힘으로 이런 실수를 예방하기는 힘들다"며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시스템을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빈크리스틴 사고


반드시 정맥주사해야 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척수강(척추 내 빈 공간을 따라 신경다발인 척수가 지나가는 관)에 주사할 경우 치명적인 신경 손상과 전신마비가 나타나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 사고 즉시 척수액을 세척해 목숨을 구한 사례도 있으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