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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내일신문] 갑작스레 죽은 그들과 종현이법

 

[사필귀정] 갑작스레 죽은 그들과 종현이법

 

2012.09.13 대구매일신문 최미화 논설실장

 

 

지난 7월 고 이경재(58) 대구지검장의 갑작스런 부음에 안타까워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강력통이면서도 소통의 리더십과 정도(正道)를 걸어간 고인은 타계 직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특정인 측으로부터 시달려도 흔들리지 않고 법을 지켜나간 진정한 율사였다. 고 이경재 대구지검장은 타계 직전 서울 모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시술을 받고 퇴원했다가 안 좋아져서 유명을 달리했지만, 유족들은 시비가 일거나 알려지기를 일절 원하지 않아서 조용히 넘어갔다.

12일 오전 10시 30분, 경북대병원 7병동에서 아주 작은 행사가 있었다. 이 병원에서 2010년 5월 19일 백혈병으로 숨진 정종현 군을 잊지 않으려는 조그마한 기념판이 사진 한 장과 함께 소아과병동에 걸린 것이다. 종현이는 사진 속에서 친구들의 완치를 기원하며 해맑게 웃고 있다. 종현이는 여섯 살 때 항암 치료로 90% 이상 완치된다는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3년 1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잘 견뎠으나 마지막 항암 치료 후 사망했다.

 

그날은 종현이가 항암제 ‘시타라빈’과 ‘빈크리스틴’을 동시에 맞는 날이었다. ‘시타라빈’은 척수에, ‘빈크리스틴’은 정맥에 놓는데, 그날은 21번째 동시 치료 날이었다. 한데, 종현이는 주사를 맞은 지 몇 시간 만에 살을 쥐어뜯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져 사흘째 의식을 잃었고, 열흘째 죽었다. 이제 마지막 치료인 줄 알았는데, 급작스럽게 죽은 자식이 살아생전 너무 고생을 한 터라 부검하지 않고 화장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김영희 씨가 황산염 성분의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정맥 아닌 척수에 주사되면 종현이와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엄마의 전쟁이 시작됐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하지만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처럼,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비통해하는 어미의 심정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환자단체연합에 알리고, 소송을 시작했고, 재감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재감정 등을 의뢰받은 7개 병원은 묵살했다. 의료분쟁이 터지면 사실을 밝히기보다 무조건 의사와 병원 편을 드는 나쁜 관행이 재연됐다.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 경북대병원의 한 의료진은 “입이 있어도 저 한 사람의 입이 아니다”고 울어버렸고,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이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다.

 

환자단체연합에서 마련한 샤우팅에서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보고하자 장내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종현이의 엄마는 좋게 지내고, 아들을 잘 돌봐주던 의료진의 처벌을 원하지는 않았다. 다만 진실을 알고 싶었고, 재발되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지난달, 극적인 합의를 보기까지 많은 일이 2년여 새 터졌지만, 종현이 부모들은 사고를 낸 의료진에 대한 처벌보다 사과와 재발 방지를 원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경북대병원도 종현이를 기념하는 조그마한 추모판을 경북대병원 소아과병동에 걸면서 의료진이 실수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용기를 보였다.

 

5세 여아의 장중첩증 사망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던 경북대병원은 종현이 일로 인해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을 같은 날 처방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꿨고, 빈크리스틴을 주사가 아니라 수액과 함께 맞도록 안전조치를 취하는 변화를 보였다.

 

12일 경북대병원장은 이런 일이 생긴 것과 시간이 많이 흐르고 해결된 것을 사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진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 사망자를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백일 동안 계속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하고 속칭 ‘100일 당직’을 서는 것으로 알려진 전공의 1년차의 살인적 근무, 여의사가 3개월 출산휴가도 못 갈 정도로 빡빡한 인력 구조 등을 개선하고, 환자가 병원에서 안전하게 치료받을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이 제정돼야 한다.

 

지금 가칭 종현이법 제정을 위해서 전국에서 3천여 명이 서명을 했다. 이 문자서명(문자전용, 031-3366-5521)이 1만 명까지 모이면 국회의원 300명 전원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고,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공약으로 넣기 위해서 환자단체연합(대표 안기종)은 동분서주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꼭 환자안전법이 제정되기를 기원한다.

 

 

[출처: 대구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