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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경향] 더이상 ‘제2의 종현이’는 안된다…환자안전법, 왜 필요한가

[긴급진단] 더이상 ‘제2의 종현이’는 안된다…환자안전법, 왜 필요한가

2013.07.17 헬스경향 강인희 기자

 

 

지난 2001년 세계최고의 병원이라 자부하던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에서 탈수증으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8개월 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조시 킹. 화상으로 입원한 조시는 안정을 되찾고 빠르게 회복됐다. 하지만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고열, 설사 등 감염의 전형적 증상을 보였다. 주치의는 진통제를 맞히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통증관리팀이 이를 전달받지 못해 진통제를 투여했고 그 순간 조시 킹의 심장은 영원히 멈춰버렸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힘든 치료과정을 씩씩하게 잘 견디면서 마지막 항암치료 12사이클을 시작하기 위해 지난 2010년 경북대병원에 입원한 9살 종현이. 2박3일 예정으로 입원한 종현이는 척수강내주사로 항암제 시타라빈과 정맥주사로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맞았다. 주사를 맞은 후 종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열흘 만에 끝내 사망했다.

 

의사는 사망원인을 시타라빈 부작용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결론지었다. 종현이 부모는 직접 원인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정맥주사와 척수강내주사의 내용물이 바뀐 것을 알아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에 비슷한 투약오류사건이 발생했다. 차이점은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이 조시 킹의 죽음을 은폐하기보다는 환자안전을 보다 강조하면서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병원은 빠르게 첨단장비를 도입하고 있으며 의술 역시 해외에서 연수를 올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정작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제대로 집계된 통계조차 없을 만큼 환자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자체가 낮다. 국내에서 연간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 연간 의료사고사망자는 3만9000여명으로 그중 1만7000여명은 예방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산될 뿐이다.

 

우리나라도 종현이 부모와 여러 단체의 노력으로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늦었지만 환자안전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4월 종현이법으로 잘 알려진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1만명 제정청원이 국회에 접수되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오제세 의원이 공청회를 열었다.

 

▲의료사고 나면 일단 ‘쉬쉬’…합의보다 은폐 급급


통계자료도 없어…보고사례 공유로 재발 막아야
각 병원들 자발적 개선 의지·시스템 구축 절실

 

공청회에 참석한 각 단체와 의료인들은 환자안전법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막상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각 견해가 달랐다. 서울시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강제적 방식의 보고체계를 갖추면 의료기관이 사고 자체를 더욱 숨기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최성철 사무총장은 “정직하게 보고한 의사에게 혜택이 없으면 대부분의 의료사고는 지금처럼 합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현 병원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톨릭 성바오로병원 김영인 원장은 “각 병원의 자발적 개선의지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며 “환자안전법은 환자안전에 관한 한 누구나 공통적으로 따를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같은 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상일 교수도 “의료사고 대부분이 진료시스템 문제로 일어나는데 의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병원 내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료진이 피해자들을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외국의 경우 의료진이 실수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보호자에게 사실을 설명한 후 위로와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더니 피할 때보다 의료분쟁과 소송이 낮아진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환자안전법이 실효성 있는 법이 되기 위해서는 병원시스템 개선은 물론 각 병원이 자율적으로 보고한 사례들을 여러 병원이 공유해 재발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교수는 환자안전법을 항공기사고에 비유했다. 그는 “항공기 추락사고가 나면 해당 전문가들이 그 원인을 파악, 전 세계 항공사에 알려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한다”며 “의료사고 역시 사례를 취합하면 패턴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이를 각 병원들이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안전법에서 무엇보다 보고체계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자칫하면 사망했을 사건이 정말 많다”며 “환자안전법은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보고된 의료사고들을 수집하고 분석한 후 의료기관에 전파해 재발을 막고 특히 보고자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기본틀” 이라고 강조했다.

 

▶ 환자안전법이란?

의료기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의료사고 등 환자안전사고의 원인을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고 각 의료기관에 전파함으로써 안전사고 재발을 막자는 취지의 법.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와 환자단체연합회가 환자안전법제정을 위한 1만명 제정청원을 국회에 요청, 입법토론회를 개최했다.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