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기사/언론기사

[한게레] 종현이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종현이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⑨ 의료과오와 종현이법

 

2013.07.19 한겨레신문 노환규(대한의사협회 회장)

 

 

 

지난해 5월 환자단체가 정종현군 사망사고에 대해 해당 병원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재 국회, 정부, 의료단체 등은 한목소리로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제공
 

종현이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토요판] 노환규의 골든타임
⑨ 의료과오와 종현이법


급성백혈병 앓던 9살 어린이가
주사 잘못 투여해 숨졌다
부모 논문 찾아 증명해도
병원은 의료사고를 부인했다
나는 병원에 편지 보내고
두 차례 1인시위를 했다 

 주 120시간 이상 일하는
의사들에게 냉철한 판단과
고도의 집중력 기대 어렵다
의사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사고 인정보다 숨기고
위험한 치료 기피할 것이다

 

 

20년 전의 일이다. 흉부외과 전공의 시절 하루에도 몇 건씩 수술을 하던 나는 군복무 기간 3년을 지방의료원에서 보냈다. 지방의료원은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나는 3년 동안 심장수술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제대 후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가 전임의 생활을 시작한 첫날, 3년 만에 심장수술실에 들어갔다. 나는 몸무게 3㎏이 갓 넘은 신생아의 심장수술에 조수로 들어갔다. 오랜만의 심장수술이어서 긴장했지만, 조수 역할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일 없이 수술을 마무리하게 됐다.

 

바늘이 아이의 간을 스친 아찔한 순간


심장수술을 위해서는 인공심폐기(체외순환기)를 돌리는 장치가 필요한데, 보통은 수술의 제1조수가 이 준비를 한 뒤 수술의사가 들어와서 주된 수술을 한다. 심장수술이 끝나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 수술의사는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제1조수가 지혈을 하고 가슴을 닫는 등 마무리를 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날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교수님이 나간 뒤 나는 가슴을 닫기 위해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심장 주위에 피가 약간 고인 것이 보였다. 소량이었지만 작은 아기의 몸무게를 계산할 때 무시할 수 없었다. 출혈이 발생한 지점은 보이지 않았다. 피가 나오는 곳이 없어 보여 닫으려고 하면 또 고이고, 확인하면 출혈 부위가 없고… 여러 차례 확인 작업을 반복하던 중 횡격막 바로 아래 복막 부위에서 피가 스며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복막을 열었더니, 아뿔싸! 복강 안에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심장수술을 했는데, 건드리지도 않은 뱃속에서 출혈이라니… 피를 흡입하며 들여다보니, 왼쪽 간의 표면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뿔싸! 그 순간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심장수술이 끝난 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심장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도록 심장의 표면에 전극을 붙여놓고 전선을 피부로 빼낸다. 그 과정에서 피부를 뚫기 위해 뾰족한 바늘을 사용하는데, 가슴에서 피부로 빼내는 과정에서 바늘이 간을 스친 것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일어난 이유는 아기의 간이 심장기능부전으로 인해 워낙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에 있어야 할 간이 왼쪽 폐 밑까지 나와 있었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왼쪽 전극을 뺄 때 내가 부주의했기 때문이다. 나의 명백한 실수였다. 출혈량은 많지 않았지만 아기의 체중이 워낙 적었으므로 아기에겐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찢어진 간에서 나오는 출혈을 멈출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꿰매면 약하디약한 간이 더 찢어지고, 지혈제를 쓰려고 해도 체외순환기를 돌렸기 때문에 혈소판이 깨져 지혈도 잘 되지 않았다. 불과 20여분 사이에 아기의 혈압이 떨어져 쇼크상태로 빠졌다. 교수님이 다시 돌아오셨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의 어이없는 실수로 작은 생명 하나가 가는구나. 드디어 내가 크레바스에 빠지는구나. 심장외과의사의 꿈도 끝나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출혈은 계속됐다. 이러다 정말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드디어 출혈이 멎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아이의 생사가 달린 사투가 있었지만, 며칠 뒤 아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퇴원했다. 내겐 평생 잊지 못할 아찔한 사건이었다. 의료사고는 많은 경우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다. 의사에게 고의성이 없어도 마치 교통사고가 순간적으로 찾아오듯, 탐험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에 빠지듯, 한순간 일어나는 것이다.

 

존슨앤존슨이 될 것인가, 도요타가 될 것인가


2년 전, 의사협회장이 되기 전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라는 회원 약 6000명의 의사단체에서 대표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한 의료사고 관련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급성백혈병을 앓던 9살 아이가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주사가 뒤바뀌어 주입되는 바람에 숨졌다는 기사였다. 아이는 3년간의 백혈병 치료 중 마지막 치료를 위해 입원한 상태였다.

 

이 기사에 내가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이 사건과 관련한 소송 도중 법원한테서 사실조회와 감정을 요청받은 대학병원들이 하나같이 법원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재판이 답보상태에 빠졌다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처음 대형 대학병원 두 곳에 요청을 했지만 이들이 거절했고, 법원이 다시 다른 대형 대학병원에 요청했는데, 이 역시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곳에 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의료과오가 의심되는 사건에 대해 대학병원에서 감정을 거부한다는 것은 전문가의 권위와 윤리를 함께 포기하는 일이다.


나는 일단 기사를 쓴 기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백혈병환우회 회장이 직접 기사를 올렸다고 했다. 그간의 사정을 듣고 아이의 의무기록을 건네받아 검토했다. 의무기록을 통해 확인된 아이의 증세와 경과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들어가는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고한 논문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과중한 전공의(레지던트)의 업무와 이중감시체제의 부재가 사고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전공의는 늦은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된다. 사고는 밤 10시가 지나 일어났고, 과중한 업무에 집중력이 떨어진 전공의가 두 가지 항암제를 동시에 투여하면서 주사제를 혼동하여 바꾸어 투여한 것으로 생각됐다.

 

인터넷 기사는 조만간 지상파 방송에 나가게 될 예정이었다. 언젠가는 드러날 진실을 계속 감춘다면 병원뿐 아니라 전공의에게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병원 쪽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먼저 병원에 장문의 편지를 써보냈다. 나는 1982년 미국에서 일어난 이른바 ‘타이레놀 사건’과 2009년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건’ 이야기를 했다. 타이레놀 사건이란 1982년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 7명이 청산가리에 의해 숨지자, 구체적인 원인이 확실치 않았는데도 타이레놀을 생산하던 존슨앤존슨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전국의 타이레놀을 회수한 사건을 말한다.

 

나중에 독극물 사망의 원인은 정신이상자의 행동으로 밝혀졌고, 국민의 안전을 위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한 존슨앤존슨은 미국민의 믿음을 얻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자동차기업인 도요타는 자동차의 결함이 일찌감치 의심됐는데도 끝까지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끝내 대형 리콜사태를 자초했다. 나는 병원 쪽에 존슨앤존슨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편지로 병원의 태도가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수위를 높여 일인시위를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던 의사단체의 임원진은 반대했다. 의료사고를 의사단체 대표가 나서서 밝히는 것은 회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며칠 뒤 1박2일 워크숍에서 새벽 4시까지 격렬한 토의가 벌어졌고, 한 명 빼고 전원 찬성이라는 ‘반전’이 일어났다. 의사가 국민의 편에 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정답이라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일인시위 직전, 나는 아이의 부모를 만났다. 병원이 부인하는 의료사고에 의학논문을 찾아가며 의료과오가 있음을 밝혀낸 아이의 부모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병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조처”라며 “그것이 아이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병원 앞에서 흰 가운을 입고 두 차례 일인시위를 했다.

1년이 지나 내가 의사협회장이 된 뒤, 결국 이 사건은 지상파 방송에서 보도가 됐다. 보도가 나가기 하루 전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의료사고의 개연성을 인정하고 유가족과 합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보도가 나간 뒤에도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의료사고의 개연성을 인정한다는 발표를 한 뒤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를 취해나갔다.

 

비록 기대보다 늦었지만, 병원이 어렵고도 용기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뒤 의료사고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법 제정 논의가 국회와 의료계에서 이어졌다. 백혈병환우회장에서 환자단체연합회장이 된 안기종 대표는 ‘종현이법’(아이의 이름이 ‘정종현’이다)으로 불리는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벌이고 있고, 최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미국에서도 한 전공의가 과중한 업무에 집중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잘못 처방한 약에 의해 환자가 숨지자, 즉각 환자의 안전을 위해 전공의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법안이 통과된 사례가 있다. 주당 120시간 이상 살인적인 여건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냉철한 판단과 고도의 집중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졸음운전이 음주운전처럼 위험하듯이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는 의료사고로 이어진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안은 의료인 보호뿐 아니라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사고를 줄이는 노력뿐 아니라 의료사고를 투명하게 인정하고 환자와 의사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의료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의료사고’보다 ‘의료과오’라 말해야 하는 이유


‘왜 의사도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의사가 보호받지 못한다면 의사는 사고를 인정하지 않고 숨길 것이기 때문이고 위험한 치료를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한해 약 6000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30여만명이 부상을 당하지만, 교통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포기하는 사람도, 교통사고를 숨기는 사람도 없다. 보험을 통해 보호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사고는 왜 그렇지 않을까. 의사들이 가입하는 배상보험상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있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자동차보험처럼 의료사고 배상보험을 통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드러났듯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통해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병원 구조 때문이다. 환자에게 부담을 주는 비보험 진료를 하지 않으면 대다수 의료기관들은 배상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의료진이 보험에 미가입된 상태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환자도 보호받지 못하고 의료진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저수가에 대한 제도 개선 없이 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대다수 의료기관은 진료를 포기할 것이다. 보험수가는 낮고 비보험수가는 높게 책정된 지금의 제도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


흔히들 의료사고를 위 사건처럼 ‘의료인의 실수에 의해 일어난 사고’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어보면 무엇이 의료사고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50대 남성이 집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마침 집에 있던 부인이 심폐소생술을 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 살아 있었고 뇌 기능도 남아 있었다. 응급으로 심장조영술과 관상동맥을 넓혀주는 시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심장조영실이 바닥공사 중이어서 불가능했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위중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요법기기·몸의 피를 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넣어주는 장치)를 돌리면서 심장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전공의는 에크모를 담당하는 흉부외과 의사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흉부외과 의사가 병원으로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 환자는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이 환자는 의료사고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운이 없었던 것일까?

이 글을 올린 전공의는 이런 글도 올렸다. 경운기에 깔린 50대 남성 환자가 다발성 갈비뼈 골절과 가슴에 피가 차는 혈흉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한다. 가슴에 고인 피를 빼내기 위해 흉관을 넣었는데, 많은 양의 출혈이 확인돼 급히 수술이 필요했다.

 

곧바로 흉부외과 의사를 호출했으나, 흉부외과 의사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환자는 수술실로 옮겨졌으나 수술도 받아보지 못하고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 병원은 지난 10년 동안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서 뽑지 못했고, 따라서 흉부외과 의사 자체가 부족한 병원이다. 그렇다면 이 환자들은 의료사고를 당한 것인가, 아닌가? 이런 일은 매우 흔히 일어난다.


최선의 치료는 환자와 의사 공동의 목표다. 그 목표는 ‘경제적인 치료’의 강요에 의해 방해받는다. 의료사고 위험은 높은데 낮은 분만수가를 정부가 고집하자, 많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 현장을 떠났다. 최근 3년 동안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숨지는 모성사망률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었다. 대통령이 약속하는 안전한 대한민국은 이 문제의 해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 국민의 관심과 의사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사고’란 의료행위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말한다. 따라서 의료사고에는 의료진의 실수가 포함된 의료과오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료사고라는 용어는 정확하게는 ‘의료과오’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의료과오는 통상 ‘의료인이 기울여야 할 업무상의 필요에 의한 주의를 게을리해 환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독자들에게 익숙한 의료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