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안전한 치료 위한 종현이법
지난 9일,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토론회 열려
2013.04.10 오마이뉴스 김연희 기자
2010년. 한 백혈병 아이가 잘못된 치료로 사망했다. 주인공은 정종현군. 정맥으로 놓아야 할 빈크리스틴 주사가 척수로 투여되는 바람에 발생한 의료 사고였다. 이 사건은 <MBC 2580> 등에 방송될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의료사고는 또 다시 발생했다. 2012년 또 빈크리스틴이 잘못 투여되어 또 다른 사망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 환자단체연합회, 대한의사협회가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 토론회가 그것이다. 비록 논의 자체가 초기 단계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료계·환자단체 등 각계가 같은 목표로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제세 의원은 "주요 선진국들은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이 환자 안전사고 발생 시 자발적으로 보고하고, 전문가들이 분석해 문제 해결 방안을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의료사고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환자안전을 다루는 전담부서도 부족한 실정이다. 서둘러 병원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신속히 보고하고 그 정보를 의료계 전체가 공유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환자안전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자안전법 제정 1만명 서명 전달식을 가졌다. ⓒ 환자단체연합회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17000여 명의 환자가 예방 가능한 안전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이는 연 6000여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3배가 되는 수치이다. 우리 사회가 환자 안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환자안전법의 핵심은 종현이다. 주제 범위가 인력, 시설, 수가, 기구 등으로 확대되다 보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환자안전법 제정 논의가 논쟁에만 치우쳐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며 환자안전법 논의의 외연 확대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새로운 법이냐?, 기본법 형태냐?
이날 토론회에서는 법률 형태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졌다. 동일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사고 보고체계를 마련 필요성을 공감하고는 있지만, 기타 법령과 기존 제도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독립법을 제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존 법령 등을 포괄할 수 있는 기본법 형태로 가야할 지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렸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최재욱 소장은 '환자안전 제도 도입 방안'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에 환자안전을 총체적으로 전담하는 조직인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보고체계를 중심으로 환자안전법의 주요 내용'이라는 발제를 한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실 이상일 교수도 "동일한 의료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의료사고에 대한 자율적 보고가 중요한데, 이번 법안의 핵심도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환자안전법을 '환자안전에 관련된 보고 및 설명에 관한 법률'로 구체화할 것을 제안했다.
반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 교수는 '분쟁사례를 중심으로 의료사고 예방체계구축'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의료사고를 넘어 환자 안전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만 미국 역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환자안전법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직과 법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복지부 곽순헌 의료기관정책과장은 "보고체계와 인센티브를 담은 기본적 내용만 담은 기본법 형식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인증제와의 중복문제 등 다른 법에 명시된 부분들은 시작을 먼저 하고 난 후, 추후에 논의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환자에 대한 의식 변화가 먼저
보고체계 활성화를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제시됐다. 의료인들의 자발적인 보고를 이끌어낼 보완책들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날 참석자들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무조건 법제화보다 환자안전에 대한 의식 변화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 병원장은 "환자안전법은 안전이 아니라 안심법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 안전에 대한 의료인 스스로 가치와 목표로 인식해야 하고 환자들 본인도 자신에게 투여되고 있는 약이 어떤 약인지 확인해야 하는 참여와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9일,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입법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 환자단체연합회
김영일 한국의료질향상학회 이사는 "환자안전 보고체계와 관련해서는 병원 내에서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법제화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현재도 의료분쟁중재위원회가 있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이같이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자안전법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환자안전 보고에 대한 인식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라고 언급했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정책의사도 "환자안전에 대한 대형병원이 가장 큰 이해당사자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내부 분위기는 공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 현장 온도 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은 수용성 낮아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수 있다. 의료사고 보고 강제화·의무화 움직임은 그래서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료현장 문제에 대한 종합적 대책이 필요
환자안전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종합적인 대책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 문제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이다. 종현이에게 잘못 투여된 빈크리스틴도 전공의의 살인적인 노동강도도 문제의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의료인의 안전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환자 안전을 높이기 위해서는 꼭 함께 논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봐야 하는데 환자안전법 단일법 제정에 너무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든다. 의료의 질을 높이고 사고율을 줄이는 것이 환자안전법이다. 예를 들어 적정한 의료인력을 충원하는 것도, 1분을 진료해도, 60분을 진료해도 똑같이 보상하는 보상체계를 바꾸는 것도 모두 환자안전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환자안전법은 포괄적인 제도개선을 목표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 기타 의견으로 이인재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환자안전법의 핵심은 실태조사이다. 의료사고가 얼마나 일어나는 정확한 집계가 되고 있지 않다. 의료현장의 상황이 제대로 수집되어야만 재발 방지대책을 세울 수 있다. 실태조사 부분을 꼭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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