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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파나뉴스] 종현이법보다 종현이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종현이법보다 종현이 어머니가 위대한 이유

 

2013.04.19 이인재(법무법인 우선 변호사)

 

 

 

지난 4월 9일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오제세 의원,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 주관)에서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 및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환자의 생명과 신체에 관한 기본권을 보장, 강화하는 취지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한 법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여야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어서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이 법안의 토론회를 가능하게 한 데는 여러분의 노고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종현이 어머니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종현이는 대구에 사는 9살된 백혈병 환우였는데, 함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11번째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12번째 항암제를 주입받는 과정에서 의료진의 실수로 정맥에 투여되어야 하는 빈크리스틴(항암제)이 척수강내에 투입되었고, 이후 두통과 마비증상 등이 나타나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을 하였다. 병원측은 과실을 부인하였고, 종현이 어머니는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료소송 전문변호사를 선임하여 의료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진료기록 기재 미비로 감정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었다. 재판이 답보 상태 있는 가운데, 환자단체연합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중재를 하여, 병원측은 유족측과 극적으로 합의를 하였다.

 

종현이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시는 이땅에 종현이와 같은 사례가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환자단체연합회에 환자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하였다. 그러던 중 2012년 10월경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빈크리스틴 교차투여되어 백혈병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이번에 의료진은 정맥에 투여해야 할 약물과 척수강에 투여해야 할 약물을 시차를 두고 투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약물이 바뀌어 투여되었던 것이다. 빈크리스틴 교차투여에 대한 논문을 검색해보면, 종현이 뿐만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두 약이 무색투명한 앰플이라서 교차투여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즉, 종현이 이전에도 있었던 사고이고, 종현이 이후에도 또 발생하였던 사고인 것이다.

 

필자가 10년전 겪은 사건은 산부인과 의사가 첫 개원을 하여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산모가 분만 이후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처치로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벽면 콘솔에 붙어 있는 산소 밸브를 틀어서 산소를 공급하였는데, 산모의 산소포화도가 회복되지 못하고 도리어 사망을 하였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산모에게 공급된 것은 산소가 아니라 질소였다. 이유는 산부인과가 있는 건물에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에서 산소관과 질소관의 배관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민사상 손해배상 뿐만 아니라 형사적인 책임을 져야 했고, 배관을 한 업자들도 민, 형사책임을 져야 했다. 그 이후부터 인테리어 과정에서 산소관과 질소관의 배관이 바뀌지 않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설계단계에서 배관의 두께와 접합부를 달리하여, 산소관과 질소관이 연결되지 않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종현이가 겪은 의료사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교차투여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정맥에 투여해야 할 의약품과 척수강내 투여해야 할 의약품의 색깔과 크기를 달리하고, 주사기도 달리 디자인하여 설계, 제조가 되었다면, 아마도 교차투여되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종현이도, 그 이후의 백혈병 환자도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생명은 우주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막을수 있는 죽음을 맞지 못한 것이 내내 가슴 언저리에 남아 있다.

 

종현이 어머니는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와 함께 빈크리스틴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를 방문하여, 이러한 부분을 상의해 보겠다고 한다.  토론회 과정에서 이와같이 사전에 교차투여되거나 배관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조나 설계단계에서 구분되도록 하는 것을 “design for safety"라고 하면서, 이미 선진국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고 하였다.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 부분들을 찾아서 먼저 제도적 개선을 하는 것이 시급한 것임을 깨달았다. 생명을 잃고 나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보완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임상 현장에서는 의료진이 아무리 주의를 하더라도 안전사고는 늘 있을 수밖에 없다. “To err is human" 인간은 실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의 안전사고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죽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죽지 않을 수가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환자 안전사고인 것이다.

 

2012년 4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발족했다. 중재원은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구제를 위하여 감정과 조정, 중재를 하는데 목적이 있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상당히 많이 이용하는 제도가 되었다. 사후구제를 위한 제도는 마련되었지만, 아직 사전 예방에 관한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교통사고의 경우 도로교통법에서 운전자에 대한 주의의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서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입증하기만 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나아가 교통사고 처리특례법에서는 보험가입이나 합의가 된 경우 사망이나 중과실이 아닌 한 형사처벌특례까지 인정하고 있다.

 

산업재해사고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산업안전에 관한 기준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보험과 보상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제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의료분쟁조정중재법으로 피해구제에 관한 것을 규정하고, 환자안전에관한 법률에서 사전 예방과 재발방지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면, 대한민국은 3대 인신사고에 대한 사전 예방 및 사후구제책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지금까지 발생하였던 의료사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이다. 대한민국이 의료사고로 인하여 질병이 얻거나 사망을 하는 경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진료과목에서, 어떤 유형으로 의료사고가 얼만큼 발생하는지, 그 의료사고는 사전에 예방이 가능한 것인지, 동일, 유사한 의료사고가 계속되는지, 피해정도나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의료기관별로, 요일별로, 계절별로, 의료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는 법원, 검찰, 한국소비자원,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보험회사(손해사정인), 의협공제회, 법률사무소, 당사자간 합의 등 많은 의료사고들이 흩어져서 해결이 되지만, 이에 대한 정보를 통합해서 정확하게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둘째, 수집된 정보에 대하여 의료안전사고에 대한 원인분석을 하여 재발방지가 가능한 의료사고를 유형화하는 것이다. 환자안전법의 핵심이 재발방지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 의료사고를 유형화해서 재발방지를 할 수 있는 것들을 유형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고사례를 의료계, 약계, 전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다. 식약처는 의약품의 용량 등에 문제가 있는 경우 부작용 등에 관하여 안전선 서한을 통하여 의료계와 약계에 전파하고 있다. 이와같이, 재발방지를 할수 있는 사고유형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약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경우 약사법과 의료기기법에서 의약품과 의료기기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의료행위로 인한 의료안전사고가 발생하였는데, 그 결과가 종현이 사건과 같이 너무 중대하고 명백한 적신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보건소 등에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해야 재발방지를 할수 있다. 지금도 과거 어떤 곳에서 일어났던 동일, 유사한 의료안전사고가 다른 의료인에 의하여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필자는 강의요청이 있을때마다, 의대 본과 4학년과 인턴에게 의료사고 예방강의를 하고 있다. 의료사고 예방강의내용은 이미 발생한 의료사고의 임상경과, 전문지식, 의료진이 간과하였던 내용 등을 리뷰하면서, 동일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환자를 진료하였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의사는 그 상황에 답을 하면서, 의료사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동일, 유사한 사고를 겪지 않도록 학습을 하게 된다. 모든 의대 과정에 의료안전사고 예방강의가 필수과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종현이법 공청회를 다녀와서 느낀 점은 종현이법보다 종현이 어머니가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환자단체도 국회의원도 하지 못한 것을 종현이 어머니가 해 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사고 피해자나 가족들은 자신의 사건이 해결되면, 더 이상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고발생부터 사건해결까지 너무나 어둡고 긴 터널을 견디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 어떤 행동으로 실천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종현이 어머니는 종현이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운동가가 되었다. 국회나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보건복지부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을 해 낸 것이다. 어머니는 강하고 위대하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어머니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종현이 어머니 같은 분이 딱 세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출처: 메디파나뉴스]